월 간 묘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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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곁에서
혼란한 세상이다. 1월이면 월간 묘미도 다시 시작하기로 했는데 통 하고픈 말들이 정리되질 않았다. 설상가상 새해부터 독감에 걸려 끙끙 앓고 나니 나 혼자만 1월 7일쯤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계획하던 연력 제작의 시기를 놓쳐버렸고 컨디션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고작 일주일짜리 구덩이에 빠진 것 치고는 혹독한 액땜이었다.
이 혼란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작년부터 인연을 맺어 온 수강생님께 반 고흐 전시에 다녀왔다며 전시가 참 좋다는 말을 들었다. 고흐의 전시 소식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사실 바야흐로 10년 전(!) 다녀왔던 기억이 있어 굳이 한 번 더 보러 갈 마음이 들지 않았는데, 초기 데생 작품이 많아 좋았다는 말에 주말 인파를 뚫고 바로 달려갔다. 평소 한적한 평일 전시 관람을 선호하기 때문에 줄을 서 관람해야 했을 정도로 북적북적한 예술의 전당의 분위기가 어색했지만,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 뜻밖에도 전시에서 본 작품들로 드디어 진짜 새해를 맞이할 수 있게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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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는 생전 재료값 이상으로 작품을 팔아보는 것이 목표였다. 동생 테오의 지원을 받아야만 겨우 삶을 이어갈 수 있었고 이에 늘 비참함을 느꼈다. 일생동안 배고팠고 외로웠다. 그래서 암담했다. 피폐함을 견디다 온전치 않아진 정신으로 그는 자신의 귀를 자르는 지경까지 가게 되었고 결국 가슴에 총을 쏴 가장 비극적인 방법으로 삶을 마감했다.
비극적인 삶의 끝과 <까마귀 나는 밀밭>의 색감과 주제가 된 까마귀 등이 자살을 암시하는 그림이라고 알려진 탓에 고흐를 그저 암울한 미치광이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고흐는 예술을 사랑했고 삶을 긍정하려 노력했다. 암담한 현실을 밝고 다채로운 색으로 덮었다. 무채색의 현실을 이겨내기 위한 용기 있는 빛의 선택이었다. 전문 모델을 섭외할 돈은 없지만 씨를 뿌리는 농민과 해를 그렸고 서민들의 삶을 조명하며 인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놓지 않았다. 어두운 현실 보다는 찬란히 부서지는 빛을 담았다. 사람을 사랑했고, 어둠보다는 밝음에 있고 싶어했다.
고흐의 그림에는 작열하는 태양이 자주 등장한다. <별이 빛나는 밤>의 일렁이는 달빛과 비슷하지만 일렁이지 않고 직선적인 햇살을 강렬하게 표현한 태양이다. 나는 이 태양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관람이 끝난 후에도 작품 상단에서 화폭을 물들이던 태양의 이미지가 잊혀지지 않았다. 작업실에 붙이려 사 온 엽서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며칠 전 적어 둔 짧은 글이 떠올랐다. 왜 태양이 그렇게 눈에 띄었는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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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일의 밤은 하루 아침에 세상을 요란하게 뒤엎고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충격적이고 두려웠던 이 밤은 많은 것을 무너뜨리려 했다. 내게도 하반기 내내 준비해 온 기획전 오픈의 이틀 전 일어난 일이라 허탈했지만 금세 체념이 될 만큼 어디까지 우릴 다치게 할 지 알 수 없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다음 날 소란스런 마음을 다잡으려 모닝 커피 한 잔을 미리 주문해두고 출근길을 나섰다. 늘 작업실에서 마시는 커피나 차가 아니라 오랜만에 밖에서 사 마시는 따뜻한 라떼 한 잔. 집에서 가져온 텀블러에 담길 커피 한 잔의 따스함은 스스로에게 주는 위로와 용기였다.
횡단보도를 기다리는 동안 회사원들 틈에 섞여 따스한 해를 느꼈다. 누군가의 이른 점심과 나의 늦은 출근이 공존하는 이 시간은 지극히 일상적이었지만 하루아침에 너무나도 많은 것이 다르게 느껴졌다. 어제와는 공기가 사뭇 다른 한낮의 사람들 틈에 있으니 더욱 마음을 다잡고 싶어졌다. 내겐 지키고 싶은 소중한 일상이 있고 그리고 싶은 그림과 만들어야 할 것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어두운 세상이 될지라도 결코 잠식되고 싶지 않았다.
따스한 태양 아래 사람들의 말소리가 조곤거리던 오전 열한시. 신호등의 빨간불이 채 파란불로 바뀌기 전 떠오른 생각 몇 문장을 핸드폰에 적었다.
“밤에 익숙해지고 달빛에 마음이 기울어도
자꾸만 태양의 곁에 가 서려고 노력하는 일.
이해되지 않는 것 투성이인 세상에서
그럼에도 나의 할 일을 해내며 다음을 기약하는 일.
모두 지금 서 있는 곳에서 내가 다짐한 일이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양의 곁에 서서 사람들과 함께 해내고 싶다.
겨울에는 짧아진 해를 아쉬워하며 더욱 더 쫓아다니고 여름에는 작열하는 태양을 온 몸으로 만끽할 것이다. 바다와 함께라면 조금 따가워도 괜찮으니까. 좋아하는 봄과 가을에는 볕이 좋은 날을 골라 발리에서 데려온 나의 비치 블랭킷을 펴고 잔디밭에 누워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맛있는 와인 한 잔에 제철 과일도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지.
하지만 무엇보다도 지금 여기서, 이렇게나 뒤숭숭한 적 없던 연초에 추위를 녹이는 이 햇살 아래에서 무엇이든 함께 하고 싶다. 분명 그게 뭐든 태양의 아래에서는 다 괜찮을 것이다. 시작에 비해 끝이 보잘 것 없어도, 설사 대단치 못한 일이라도. 태양은 고흐의 그림 전체를 비추던 것 처럼 우리의 삶을 비춰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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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한 세상이다. 1월이면 월간 묘미도 다시 시작하기로 했는데 통 하고픈 말들이 정리되질 않았다. 설상가상 새해부터 독감에 걸려 끙끙 앓고 나니 나 혼자만 1월 7일쯤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계획하던 연력 제작의 시기를 놓쳐버렸고 컨디션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고작 일주일짜리 구덩이에 빠진 것 치고는 혹독한 액땜이었다.
이 혼란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작년부터 인연을 맺어 온 수강생님께 반 고흐 전시에 다녀왔다며 전시가 참 좋다는 말을 들었다. 고흐의 전시 소식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사실 바야흐로 10년 전(!) 다녀왔던 기억이 있어 굳이 한 번 더 보러 갈 마음이 들지 않았는데, 초기 데생 작품이 많아 좋았다는 말에 주말 인파를 뚫고 바로 달려갔다. 평소 한적한 평일 전시 관람을 선호하기 때문에 줄을 서 관람해야 했을 정도로 북적북적한 예술의 전당의 분위기가 어색했지만,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 뜻밖에도 전시에서 본 작품들로 드디어 진짜 새해를 맞이할 수 있게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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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는 생전 재료값 이상으로 작품을 팔아보는 것이 목표였다. 동생 테오의 지원을 받아야만 겨우 삶을 이어갈 수 있었고 이에 늘 비참함을 느꼈다. 일생동안 배고팠고 외로웠다. 그래서 암담했다. 피폐함을 견디다 온전치 않아진 정신으로 그는 자신의 귀를 자르는 지경까지 가게 되었고 결국 가슴에 총을 쏴 가장 비극적인 방법으로 삶을 마감했다.
비극적인 삶의 끝과 <까마귀 나는 밀밭>의 색감과 주제가 된 까마귀 등이 자살을 암시하는 그림이라고 알려진 탓에 고흐를 그저 암울한 미치광이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고흐는 예술을 사랑했고 삶을 긍정하려 노력했다. 암담한 현실을 밝고 다채로운 색으로 덮었다. 무채색의 현실을 이겨내기 위한 용기 있는 빛의 선택이었다. 전문 모델을 섭외할 돈은 없지만 씨를 뿌리는 농민과 해를 그렸고 서민들의 삶을 조명하며 인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놓지 않았다. 어두운 현실 보다는 찬란히 부서지는 빛을 담았다. 사람을 사랑했고, 어둠보다는 밝음에 있고 싶어했다.
고흐의 그림에는 작열하는 태양이 자주 등장한다. <별이 빛나는 밤>의 일렁이는 달빛과 비슷하지만 일렁이지 않고 직선적인 햇살을 강렬하게 표현한 태양이다. 나는 이 태양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관람이 끝난 후에도 작품 상단에서 화폭을 물들이던 태양의 이미지가 잊혀지지 않았다. 작업실에 붙이려 사 온 엽서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며칠 전 적어 둔 짧은 글이 떠올랐다. 왜 태양이 그렇게 눈에 띄었는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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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일의 밤은 하루 아침에 세상을 요란하게 뒤엎고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충격적이고 두려웠던 이 밤은 많은 것을 무너뜨리려 했다. 내게도 하반기 내내 준비해 온 기획전 오픈의 이틀 전 일어난 일이라 허탈했지만 금세 체념이 될 만큼 어디까지 우릴 다치게 할 지 알 수 없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다음 날 소란스런 마음을 다잡으려 모닝 커피 한 잔을 미리 주문해두고 출근길을 나섰다. 늘 작업실에서 마시는 커피나 차가 아니라 오랜만에 밖에서 사 마시는 따뜻한 라떼 한 잔. 집에서 가져온 텀블러에 담길 커피 한 잔의 따스함은 스스로에게 주는 위로와 용기였다.
횡단보도를 기다리는 동안 회사원들 틈에 섞여 따스한 해를 느꼈다. 누군가의 이른 점심과 나의 늦은 출근이 공존하는 이 시간은 지극히 일상적이었지만 하루아침에 너무나도 많은 것이 다르게 느껴졌다. 어제와는 공기가 사뭇 다른 한낮의 사람들 틈에 있으니 더욱 마음을 다잡고 싶어졌다. 내겐 지키고 싶은 소중한 일상이 있고 그리고 싶은 그림과 만들어야 할 것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어두운 세상이 될지라도 결코 잠식되고 싶지 않았다.
따스한 태양 아래 사람들의 말소리가 조곤거리던 오전 열한시. 신호등의 빨간불이 채 파란불로 바뀌기 전 떠오른 생각 몇 문장을 핸드폰에 적었다.
“밤에 익숙해지고 달빛에 마음이 기울어도
자꾸만 태양의 곁에 가 서려고 노력하는 일.
이해되지 않는 것 투성이인 세상에서
그럼에도 나의 할 일을 해내며 다음을 기약하는 일.
모두 지금 서 있는 곳에서 내가 다짐한 일이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양의 곁에 서서 사람들과 함께 해내고 싶다.
겨울에는 짧아진 해를 아쉬워하며 더욱 더 쫓아다니고 여름에는 작열하는 태양을 온 몸으로 만끽할 것이다. 바다와 함께라면 조금 따가워도 괜찮으니까. 좋아하는 봄과 가을에는 볕이 좋은 날을 골라 발리에서 데려온 나의 비치 블랭킷을 펴고 잔디밭에 누워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맛있는 와인 한 잔에 제철 과일도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지.
하지만 무엇보다도 지금 여기서, 이렇게나 뒤숭숭한 적 없던 연초에 추위를 녹이는 이 햇살 아래에서 무엇이든 함께 하고 싶다. 분명 그게 뭐든 태양의 아래에서는 다 괜찮을 것이다. 시작에 비해 끝이 보잘 것 없어도, 설사 대단치 못한 일이라도. 태양은 고흐의 그림 전체를 비추던 것 처럼 우리의 삶을 비춰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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