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간 묘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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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튤립
스튜디오 묘미를 운영하며 가슴 한 켠에는 <언젠가는 꼭 해보고픈 작업> 리스트를 간직하고 있다. 어떤 날에는 이 모든 걸 다 해치워 버리고 싶기도 하지만 요즈음에는 스튜디오 묘미 1년, 2년 하고 그만할 것도 아닌데 조급할 필요가 있나 싶어 아끼는 초콜릿을 하나씩 꺼내어 먹듯 필요할 때에 비장한 마음으로 만들어 세상에 내놓는 재미를 느끼고 있다.
작년 가을, 그 때야 말로 앞에서 말 한 ‘이 모든 걸 다 해치워 버리고 싶은’ 날의 연속이었다. 이상하게도 조급한 마음으로 달력을 만들면서(달력도 리스트 중 하나였다) 동시에 튤립 구근 패키지를 구상했다. 튤립 구근 패키지는 묘미의 화분에 구근을 세트로 판매하는 기획으로 언젠가 튤립의 씨앗이 상상하던 모양과 크기가 아닌 훨씬 크고 귀여운 구근의 형태였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있었다. 디자인의 대부분이 튤립으로 이루어진 스튜디오 묘미에게 이 기획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달력과 구근 패키지 뿐 아니라 일상적인 업무까지 더해져 하루에 해야 할 일이 10개쯤 되었고, 1인 브랜드의 사장은 이 모든 걸 혼자 해내야 했다. 그렇게 한 달정도 지나자 혼자서 이 모든 걸 동시에 해내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튤립 구근 패키지 진행을 중단하게 되었다.
문제는 이번엔 구상에서 실현 단계까지 넘어가는 중이었기에 내 손에 튤립 구근이 60알 정도 들려 있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달력 작업을 마무리 짓고 나니 구근에서 싹이 하나 둘 올라오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연말 이벤트로 나눔을 결정했다. 사이트 구매자 분들과 클래스를 하러 오시는 분들, 가끔은 연말 모임에서도 나눠주다 보니 손에 들린 튤립 구근이 모두 새 주인을 찾아갈 수 있었다.
구근이 열 알 정도 남았을 때 작업실에도 하나 심어보았다. 식물 키우는데 소질이 없기 때문에 식물 박사님들의 글을 많이도 찾아 읽었다. 덕분에 구근에서 올라온 싹은 쑥쑥 자랐다. 하루에 1cm씩은 자라는 것 같았다. 반짝이는 연두색 싹은 단단하게도 말랑하게도 보였고 자랄수록 매끈해졌다. 어느새 출근하자마자 불도 켜지 않고 밤 새 자란 튤립을 보러 가는 것이 나의 새로운 루틴이 되었다.
한달쯤 지났을까. 어김없이 불을 켜는 것도 잊은 채 튤립을 보러 갔다가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리를 꺅 질렀다. 초록 잎 사이에서 작은 빨강을 발견한 것이다! 흙이 말랐는지 만져보며 오늘은 얼마나 자랐나 어제의 기억과 맞대어 보던 시간과 작업실에 오지 않은 다음 날에는 초조한 마음으로 안부를 확인하던 시간을 지나 맞게 된 작은 태양의 순간. 감동적이고 황홀했다. 사람들이 이래서 꽃을 가꾸고 식물을 키우는거구나.
화분 채로 자리를 옮겨 요리조리 돌려보며 관찰해보니 뒷 면은 꽃이 꽤나 나와 있었다. 어떻게 하루만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밤 새 풀 사이를 열심히 가르며 피어났을 생각을 하니 좀 귀여운 것도 같고. 앗차차.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지금 튤립을 바라보는 내 눈이 집에서 끝내주는 낮잠을 자고 있을 깐느를 바라보는 눈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래서 식집사라는 말이 있는거구나. 고개 내민 꽃 한 송이에 참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여태 튤립을 많이도 봐 왔지만 자라는 과정의 튤립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자라나는 튤립은 그 어떤 작품보다도 아름다웠고 어떤 전시보다도 내게 영감을 주었다. 쨍하면서도 부드러운 꽃잎의 색감부터 꽃대와 이어지는 부분에 삐쭉삐쭉 자리잡은 채도 낮은 보라색과 꽃을 감싸고 있는 초록 잎의 아름다운 곡선들이 이루는 둥근 형태까지.
사람의 손을 빌려 과한 잎은 정리하고 우리에게 보여지는 튤립도 아름답지만 이건 차원이 다른 아름다움이었다. 이름을 붙이자면 성장의 아름다움 정도가 될 것 같다. 하룻밤이 지나면 또 다른 곡선을 보여주다가 이내 꽃을 활짝 피어내는것이 못내 아쉬운 그런 아름다움.
몰랐던 사실이 하나 더 있다면 실내에서 키우는 튤립은 조금 더 빨리 꽃을 피우고 진다는 것 이다. 튤립은 4월쯔음 만개하고 진다고 알고 있었는데 한달 반 만에 모습을 드러낸 나의 첫 튤립은 일주일만에 꽃을 활짝 피우고 이제는 곧 질 것을 예감한다. 처음 꽃을 보여줬을 때 부터 지는게 아쉬웠으나 정말로 지는 건 더더욱 아쉽고 서운하다.
하지만 내가 만든 화분에서 의도한 대로 기꺼이 올 해 나의 첫 묘미가 되어준 것과 꽃을 피워냈을 다른 분들에게까지 마음이 가 닿았을 걸 생각하니 고마운 마음이 아쉬운 마음을 앞지른다. 곧 꽃이 완전히 질 테지만 덕분에 겨울이 오기 전에 멈췄던 계획을 위해 움직일 수 있을 것 같다. 멈춘 덕분에 완전한 아름다움 이전에 자리할 성장의 아름다움까지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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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묘미를 운영하며 가슴 한 켠에는 <언젠가는 꼭 해보고픈 작업> 리스트를 간직하고 있다. 어떤 날에는 이 모든 걸 다 해치워 버리고 싶기도 하지만 요즈음에는 스튜디오 묘미 1년, 2년 하고 그만할 것도 아닌데 조급할 필요가 있나 싶어 아끼는 초콜릿을 하나씩 꺼내어 먹듯 필요할 때에 비장한 마음으로 만들어 세상에 내놓는 재미를 느끼고 있다.
작년 가을, 그 때야 말로 앞에서 말 한 ‘이 모든 걸 다 해치워 버리고 싶은’ 날의 연속이었다. 이상하게도 조급한 마음으로 달력을 만들면서(달력도 리스트 중 하나였다) 동시에 튤립 구근 패키지를 구상했다. 튤립 구근 패키지는 묘미의 화분에 구근을 세트로 판매하는 기획으로 언젠가 튤립의 씨앗이 상상하던 모양과 크기가 아닌 훨씬 크고 귀여운 구근의 형태였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있었다. 디자인의 대부분이 튤립으로 이루어진 스튜디오 묘미에게 이 기획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달력과 구근 패키지 뿐 아니라 일상적인 업무까지 더해져 하루에 해야 할 일이 10개쯤 되었고, 1인 브랜드의 사장은 이 모든 걸 혼자 해내야 했다. 그렇게 한 달정도 지나자 혼자서 이 모든 걸 동시에 해내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튤립 구근 패키지 진행을 중단하게 되었다.
문제는 이번엔 구상에서 실현 단계까지 넘어가는 중이었기에 내 손에 튤립 구근이 60알 정도 들려 있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달력 작업을 마무리 짓고 나니 구근에서 싹이 하나 둘 올라오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연말 이벤트로 나눔을 결정했다. 사이트 구매자 분들과 클래스를 하러 오시는 분들, 가끔은 연말 모임에서도 나눠주다 보니 손에 들린 튤립 구근이 모두 새 주인을 찾아갈 수 있었다.
구근이 열 알 정도 남았을 때 작업실에도 하나 심어보았다. 식물 키우는데 소질이 없기 때문에 식물 박사님들의 글을 많이도 찾아 읽었다. 덕분에 구근에서 올라온 싹은 쑥쑥 자랐다. 하루에 1cm씩은 자라는 것 같았다. 반짝이는 연두색 싹은 단단하게도 말랑하게도 보였고 자랄수록 매끈해졌다. 어느새 출근하자마자 불도 켜지 않고 밤 새 자란 튤립을 보러 가는 것이 나의 새로운 루틴이 되었다.
한달쯤 지났을까. 어김없이 불을 켜는 것도 잊은 채 튤립을 보러 갔다가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리를 꺅 질렀다. 초록 잎 사이에서 작은 빨강을 발견한 것이다! 흙이 말랐는지 만져보며 오늘은 얼마나 자랐나 어제의 기억과 맞대어 보던 시간과 작업실에 오지 않은 다음 날에는 초조한 마음으로 안부를 확인하던 시간을 지나 맞게 된 작은 태양의 순간. 감동적이고 황홀했다. 사람들이 이래서 꽃을 가꾸고 식물을 키우는거구나.
화분 채로 자리를 옮겨 요리조리 돌려보며 관찰해보니 뒷 면은 꽃이 꽤나 나와 있었다. 어떻게 하루만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밤 새 풀 사이를 열심히 가르며 피어났을 생각을 하니 좀 귀여운 것도 같고. 앗차차.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지금 튤립을 바라보는 내 눈이 집에서 끝내주는 낮잠을 자고 있을 깐느를 바라보는 눈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래서 식집사라는 말이 있는거구나. 고개 내민 꽃 한 송이에 참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여태 튤립을 많이도 봐 왔지만 자라는 과정의 튤립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자라나는 튤립은 그 어떤 작품보다도 아름다웠고 어떤 전시보다도 내게 영감을 주었다. 쨍하면서도 부드러운 꽃잎의 색감부터 꽃대와 이어지는 부분에 삐쭉삐쭉 자리잡은 채도 낮은 보라색과 꽃을 감싸고 있는 초록 잎의 아름다운 곡선들이 이루는 둥근 형태까지.
사람의 손을 빌려 과한 잎은 정리하고 우리에게 보여지는 튤립도 아름답지만 이건 차원이 다른 아름다움이었다. 이름을 붙이자면 성장의 아름다움 정도가 될 것 같다. 하룻밤이 지나면 또 다른 곡선을 보여주다가 이내 꽃을 활짝 피어내는것이 못내 아쉬운 그런 아름다움.
몰랐던 사실이 하나 더 있다면 실내에서 키우는 튤립은 조금 더 빨리 꽃을 피우고 진다는 것 이다. 튤립은 4월쯔음 만개하고 진다고 알고 있었는데 한달 반 만에 모습을 드러낸 나의 첫 튤립은 일주일만에 꽃을 활짝 피우고 이제는 곧 질 것을 예감한다. 처음 꽃을 보여줬을 때 부터 지는게 아쉬웠으나 정말로 지는 건 더더욱 아쉽고 서운하다.
하지만 내가 만든 화분에서 의도한 대로 기꺼이 올 해 나의 첫 묘미가 되어준 것과 꽃을 피워냈을 다른 분들에게까지 마음이 가 닿았을 걸 생각하니 고마운 마음이 아쉬운 마음을 앞지른다. 곧 꽃이 완전히 질 테지만 덕분에 겨울이 오기 전에 멈췄던 계획을 위해 움직일 수 있을 것 같다. 멈춘 덕분에 완전한 아름다움 이전에 자리할 성장의 아름다움까지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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